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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이야기①] 오리서원에 오동나무를 심은 까닭 /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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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梧里)는 ‘오동나무 마을’이란 뜻
오동나무는 봉황이 깃드는 나무
이순신, "오동나무는 공물이니 함부로 벨 수 없다"

지난 화요일, 오리서원 주변에 오동나무 12그루를 심었다. 이원익의 호 오리(梧里)는 ‘오동나무 마을’이란 뜻이다. 옛사람들은 태평성대를 이룩할 사람이 태어나길 바라며 뜰에 오동나무를 심었다. 봉황이 깃드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봉황은 새 중의 으뜸으로, 동방 군자의 나라에서 나왔다. 이 새가 한 번 나타나면 천하가 태평하게 된다’고 하였다. 

오동나무는 오월이면 향기로운 보랏빛 꽃을 피우고 여름철에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한다. 오리 선생이 즐겨 연주하던 거문고도 오동나무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우리 주위에서 오동나무를 보기가 힘들다. 설령 오동나무가 있다 해도 그것이 오동나무인지 아는 사람도 드물다. 이것이 오리서원에 오동나무를 심은 까닭이다. 

이원익이 임진왜란으로 사도(경상, 전라, 충청, 강원) 도체찰사로 재직하던 시기(1595~98)에 이순신과 가까이 지냈다. 이때 이원익이 한산도 통제영을 순시했을 때 이순신의 부탁으로 잔치를 베풀어 군사들의 사기를 높여준 일이 있다. 그러나 싸우면 승리했던 이순신을 국왕 선조와 여러 대신들이 ‘교활하다’, ‘게으르다’며 미워했다. 결국 선조가 이순신을 파직했을 때 이원익이 두 번이나 상소하여 적극 변호했다. 

이순신이 통제사로 복직되어 13척의 배로 적선 133척을 격파한 명량대첩 후 “이것은 나의 힘이 아니고 상국(相國:이원익)의 힘이었다”고 할 정도로 이원익은 이순신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오동나무는 이순신의 청렴함을 알려주는 일화에도 등장하고 있다. 1580년 이순신이 발포(지금의 전남 고흥군) 만호로 재직하던 때의 일이다.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성 박의 군관이 이순신을 찾아와 수사의 명을 전했다. 
“객사 뜰에 있는 오동나무를 베어 오라고 합니다.” 
이순신이 물었다. “무엇에 쓰신다고 하더냐?” 
“거문고를 만드신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이순신이 정색하며 말했다. 
“객사의 오동나무는 공물(公物)이니 함부로 벨 수 없다고 말씀 드려라.” 
결국 성 박의 군관은 빈손으로 돌아갔다. 직속상관의 비위를 거스른 이순신은 이 일이 빌미가 되어 파직되는 수모를 겪어야했다. 

만약 그때 이순신이 오동나무를 베어가도록 방관했던 관리였다면, 오늘 우리가 흠모하는 충무공은 없을 것이다.  

□ 글쓴이: 김영호(오리서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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